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돌프 히틀러 (문단 편집) ==== 대한민국 ==== 히틀러가 생존해 있을 때 그를 직접 만난 [[한국인]]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이 유일하다. 손기정은 대회에서 우승하고 그 다음날 아돌프 히틀러를 친견했으며 그 소감을 먼 훗날 자서전에 남겼는데,"160센티인 내 키에 비해 그의 손은 크고 억셌으며 체구는 우람했다. 그리고 독일을 이끌어가는 통치자답게 강인한 체취를 풍겼다"라고 남겼다. 손기정이 올림픽에서 수상한 이 해 8월에 태풍이 한반도 남부지방을 덮쳐 홍수 피해로 인해 2천여 명이나 되는 사망자가 발생했었는데, 이때 히틀러가 다롄 주재 총영사를 통해 수재의연금 3만원을 보내기도 했다.[[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554119361021e1026&set_date=19361021&page_no=2|의연금을 가져온 총영사와의 인터뷰 기사(10월 21일)]], [[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555719361106e10816&set_date=19361106&page_no=8|히틀러가 낸 의연금 액수를 명시한 기사(11월 6일)]][* 당시엔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으로 독-중 동맹 비슷한 개념으로 중국을 돕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과는 아무 관계도 아니였다. 단순히 올림픽에서 손기정을 만난 이후 극동에 관심을 가진 듯. 3만원의 시세는 당시 기준 서울의 고급 주택 30채 정도의 금액. 날짜를 보면 독일과 일본이 [[방공 협정]]을 맺기 대략 한달 전인데, 협정을 하루아침에 맺을리가 없으니 일본에 대한 정보를 계속 접하다가 수해 소식을 듣고 의연금 지원을 결정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조선을 콕 찝어 개인적으로 보낸 히틀러의 수재의연금 3만원이, 최초의 황인종 금메달 마라토너인 손기정과의 만남 이후 조선에 대해 생겨난 관심에 기인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는 '강한 인간'에 대해 존경심을 가진 사람이었고, 때문에 인간의 한계를 극한으로 시험하는 마라톤이란 스포츠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손기정에 대한 존중을 표하기 위한 기부였음을 유추는 가능하다.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조선인들에게도 독일(및 나치독일)은 굉장한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일개 유럽의 약소국이 민족 대단결을 통해 유럽 최강의 강국으로 거듭난 사례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시 식민지 치하 조선인들에게도 '우리도 노력하면 유럽 열강들 밑에서 신음하다 강대국으로 거듭난 독일처럼 강해질 수 있다' 라는 희망의 표상이기도 했다. 한국은 대한제국 시절에 독일에 매우 우호적이었던 적도 있고, 열강 외교도 선택지가 없긴 했지만 프랑스, 러시아, 프로이센에 줄을 서기도 했다. 대한제국군 형식은 대부분 독일군을 배경으로 삼았다. 독일의 파시즘을 연구한 독립운동가도 있을 정도로 독일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는 받지 않은 관계로 취급이 자유로운 부분이 일부 있다. 그리고 애초 대한제국과 독일의 관계는 괜찮은 수준이었으며, 이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음에도 여전히 매우 좋은 평가를 받는데 영향을 줄 정도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프로이센 시절부터 형성된 우호적 관계의 연장선이다. 사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단순히 [[홀로코스트]] 등의 만행 문제뿐만 아니라 앞서 얘기한대로 한국을 식민 통치한 [[일본 제국]]의 동맹국이었던 만큼 현대 한국에서는 좋은 취급을 받기는 힘들다. [[욱일기]]와 나치의 [[하켄크로이츠]]를 동일시하며 배척하니 말 다한 셈. 물론 하켄크로이츠는 한국 사회 특유의 고등 교육과 과도하게 눈치보는 사회 성향과 서양권의 철저한 반나치 영향력이 합쳐진 게 원인이다. 정치인이다보니 꺼림칙한 부분은 다 검열돼서 카리스마있는 애국자[* 전간기 당시 [[동아일보]] 기사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인생을 소개하며 나라없는 애국자라고 불렀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3011210020920100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30-11-21&officeId=00020&pageNo=1&printNo=3554&publishType=00020|국적도 업는 애국자 독일의 히틀러씨]] (1930년)>]로 여겨졌으며, 특히 분열된 독일을 하나로 통일시켜 외세에 맞섰다는 점 때문에 조선인 대학생들이 나의 투쟁을 읽기도 했다고. 다만 일본의 동맹국이라고 일본 쪽에서 추가적으로 검열해줘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착각하기 좋은데, 일단 결과적으로 동맹이었다는 점만 알고있을 뿐, 언제부터 동맹인지는 생각하지 않아서 생기는 착각으로, 일단 독일은 1차 대전 패전국이고 일본은 승전국이다. 승전국 권리로 아시아의 독일 식민지를 다 뜯어간 일본과 우호적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인데 두 국가의 관계는 [[중일전쟁]] 발발이 중국군의 붕괴로 이어지자 군사적 관계 재수립 차원에서 우호적으로 변한 것이지, 1938년 이전에는 그냥 일본과는 대놓고 적대적인 관계였다. 즉 검열을 해도 독일이 했지 일본이 추가로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히틀러나 독일에 대한 평가는 적어도 1937년 이전은 사실상 일본 쪽에서의 개입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독일의 주중 독일 군사 고문단을 통해 중국 내 문제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군의 정예화에 노력한 모습을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전쟁범죄에 민감해진 현대엔 그런 거 없다. 물론 일본인이든 북한인이든 베트남인이든 적국이면 무차별 폭격에 진심인 [[커티스 르메이|르메이]] 같은 부류도 있으므로 결국 승자 위주의 편향적 시선이지만, 한국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위상은 대략 '독재자라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지만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것에는 노골적인 옹호나 미화가 없으면 크게 문제삼지 않고, 농담의 영역에서는 거의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정도인데, 상기된 바와 같이 영미권이나 유럽권에서는 설령 사용자에게 악의가 없었다 해도 이런 취급이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현대 한국의 경우에는 종종 히틀러와 비슷한 행보를 가진 인물로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교하기도 한다. 둘 모두 독재자이자 육군 출신의 참전 경험이 있었으며 학살 행위를 일으킨 점 등이 공통점으로 꼽힌다. 전두환은 계엄군을 동원하여 광주 시민을 학살하였고, 히틀러 또한 군을 동원하여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하였다. 물론 호사가들의 유흥을 넘어 학술적으로 두 인물을 비교하자면, 각각의 성격과 행보, 사건의 규모에서 일반적인 나열 비교는 합리적이지 못하다. 90년대 초반 KBS에서 방영한 코미디 프로그램 '쇼 비디오자키'에서는 [[심형래]]가 출현하는 '병사 심틀러'라는 코너가 있었다. 심형래가 독일군 병사(옷을 입은) 심틀러로, 조금산, 김학래 등과 열연. 물론 얼간이 군대로 나와 아돌프 히틀러나 나치를 비꼬는 것이라 그런지 독일이나 이스라엘 대사관에선 별 문제 삼지 않았다. 더불어 적군으로 나오는 존재들이 베트남 저항군이라든지 미국 원주민들로 나오는데 이들에게 된통 당하는 게 많았다. 2000년대 초반 [[코미디언]] [[심현섭]]이 모 제과 CF를 촬영할 때 아돌프 히틀러가 연설하는 장면을 패러디했다가 독일 대사관으로부터 항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KBS]]2의 [[김승우의 승승장구]]에서 [[양동근]]이 자신이 만들었던 유행어 "한 턱 쏴!"를 설명하면서 게스트와 방청객들까지 한번에 '''로마식 경례'''를 했다. 자막까지 "아돌프 히틀러도 했던 로마식 경례"라고 넣으면서. 사실 [[나치식 경례]]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건 로마식도 아니고 분명한 나치식 경례였다"[[https://youtu.be/GV3IDGS1qDM?t=1382|#]].[* 해당 문서에서도 설명되어있지만 '''로마식 경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것이지는 복원되지 않았다'''. 그저 로마군들이 황제나 집정관을 향해 오른팔을 비스듬히 들었다는 정도의 문헌상 기록과 동상의 모습을 보고 추론하는 것일 뿐이다.] 나치 미화 의도가 아니라 어조를 설명하고자 한 것이었지만, 해외 사람들이 이걸 봤다간 난리날 거다. 아돌프 히틀러 희화화에서는 약간 벗어난 이야기지만, 어느 인터넷 소설에서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가 주변 사람들을 다 죽이자 "장하다. 김히틀러. 인류를 네 손으로 멸망시켜 버리렴."[[https://www.fmkorea.com/2910282263|#]]이라고 산부가 말하는 내용이 인상적이라서, "장하다 김XX"라고 하는 밈이 있다.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장안동(서울)|장안동]]에는 '''히틀러상사'''[* 주위의 가게 주인이 이름의 유래를 물어보니 눈에 확들어오는 이름이라고 지었다고 한다.]라는 이름을 가진 독일 수입차 부품 매장이 있다.[[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ome&no=334992|#]] 보통 한국인들에게 독일의 지도자 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의 인물이 히틀러이기 때문에, 독일 차 부품 매장의 이름을 별 아무런 생각 없이 히틀러상사라고 지은 듯 한데,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당연히 상호 등록조차 하기 어려운 이름이다. 즉 한국인의 입장으로는 유럽 어느 나라나 미국에서 '[[이완용]]한정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식당이 영업 중인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이 간판 사진은 짤방화되어 역사 관련 커뮤니티에서 종종 '[[보헤미아]] [[상병]]이 어느새 [[상사]]로 진급했다'는 드립으로 쓰인다. 2010년대를 거치고 나서는 [[일기방패|"히틀러와 나치가 유럽의 모든 악명을 가져갔고 제국주의의 만행을 다 덮어버리고 이미지 세탁 해줬으니 유럽 국가들은 나치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면서 2차대전 이전의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를 비꼬는 경우도 종종 생기고 있다. 이 농담은 나치 독일과 히틀러를 옹호하는 게 아니라 [[혐성국|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열강들도 제국주의 시절에 야만적인 만행을 저지른 것]]이 나치 독일 못지 않게 심각한데도 거의 언급되지 않는 것에 대한 비꼼이다. 두 쪽 다 나쁜 건 매한가지인데 나치 독일만 욕을 먹고 다른 유럽 열강들은 욕을 안먹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또한 어느 정도는 나치의 악행에는 분노하면서 동일한 추축국이던 일본의 전쟁범죄에는 관대한 잣대를 적용하는 서구권에 대한 비꼼도 있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히틀러에게만 가혹하고 본인들과 큰 연관이 없는 일본의 전쟁범죄에 별 관심이 없는 차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진지하게 살펴보면 정말 뼈 있는 농담이다. 영국이나 프랑스같은 다른 식민제국 출신 승전국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의 과오를 인정해버리면 승전국으로서의 위신에 금이 가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마침 자신들 이상의 만행을 저지른 나치 독일을 악마화시켜서 본인들의 과거사를 덮으려는 것이다. (비록 백인 대상이었지만) [[보어 전쟁]]에서 나치 독일에 앞서 세계 최초로 절멸 목적의 수용소를 운영한 [[대영제국]]이나 제국주의 시대 국가들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이후 제국이 해체되었을 뿐 대부분 선진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공식적인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이 모순은 유럽에서 나치 독일을 가장 강하게 부정하는 독일 역시 결코 피해갈 수 없다. 나치 독일 시기에 본인들이 침공했거나 괴뢰국, 보호령으로 삼은 유럽 나라들에게만 사죄하고 과거사를 반성하면서 정작 제국주의 시절에 식민지로 삼았고 지배의 강도도 악랄했던 [[독일령 동아프리카]] 국가들에게는 일체의 사죄와 보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중잣대를 구사한다. [[http://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38329675|#]][[https://m.fmkorea.com/best/1938687806|#]] 그나마 2010년대에 들면서 유럽에 피식민국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며 반성에 진전의 기미가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